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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워크웨이즈] 엄인호, “적우 정도면 말이 필요 없는 가수지 않나. 또 적우 솔로 앨범이니 약간의 분위기 얘기만 해주고 나머지는 모두 맡겼다.”

실력 있는 뮤지션과 대가의 만남은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적우와 신촌블루스의 엄인호가 만났다. 신촌 블루스 트리뷰트 형식을 빈 적우의 신보 [Just Blues]를 함께 제작한 엄인호를 만나 이번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정리 송명하 | 사진 전영애



적우는 2012년 신촌 아트레온, 2015년 앰프 라이브 클럽공연을 함께 했는데, 어떤 인연으로 만났고 이번 음반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2012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박인수를 위해 임희숙이 주관한 공연에서 같은 무대에 오르며 적우를 알게 됐다. 이후 신촌 블루스의 공연에 게스트를 부탁했다. 아들(엄승현)이 현재 적우의 공연 밴드 마스터를 맡고 있는데, 아들을 통해 신곡 말고 안 알려진 내 곡 가운데 몇 곡 골라서 부르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LP를 제작하기로 했다. 적우가 직접 골라온 곡은 평소에 무대에서 자주 하지 않았던 노래들이었다.


신촌 블루스는 한영애, 정서용, 정경화, 이은미 등 개성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와 함께 했던 밴드다. 지금까지 그들의 보컬 스타일에 대해 많이 관여했던 걸로 아는데, 이번에는 적우의 음반인 만큼 그렇게 하지 않고 적우에게 많은 걸 일임했을 것 같다. 

적우 정도면 말이 필요 없는 가수지 않나. 또 적우 솔로 앨범이니 약간의 분위기 얘기만 해주고 나머지는 모두 맡겼다. 신인도 아닌데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충분하게 느끼고 노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신촌 블루스의 가수들은 밴드가 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팀에 가입하며 아예 그 스타일로 따라온다. 하지만 적우는 자기 스타일이 굳어진 가수인 만큼 그러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일부 가사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열정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만들었다.


편곡과 기타 연주로는 참여했지만 원곡은 듀엣곡이 대부분인데 보컬은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또 편곡에 특별히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적우 솔로 앨범이기도 하고, 또 충분히 혼자 소화해낼 수 있는 노래들이기 때문에 보컬로는 참여하지 않았다. 편곡은 굳이 음악에서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곡이라는 생각에 복잡하게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흘러가며 노래 자체를 충분히 살려주고. 악기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했다. 전체적으로 피아노, 하몬드 오르간 같은 키보드 사운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녹음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먼저 고르고 신촌 블루스는 물론 사랑과 평화에서도 연주했던 키보디스트 안정현과 하몬드 오르간에 한석호, 드럼에 신석철과 베이시스트 김정욱을 중심으로 세션진을 꾸렸다. 이미 함께 연주해본 경험도 많아서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고 말이 필요 없는 뮤지션들이다. 


기존 음반과 비교한다면 전반적으로 사운드가 부드러워지고 오케스트레이션과 어쿠스틱 느낌이 도드라진 엄인호 공식 2집 [Sweet & Blue Hours](1994)를 연상시키는 음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음반에서 세 곡이 선곡되기도 했고.

이번 음반은 사실 블루스라기보다 팝스타일이 많다. 정통 블루스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살짝 알앤비 풍이랄까, 적우의 톤에 맞추기 위해 기타도 의도적으로 부드러운 재즈 풍으로 연주했다. 약간 팝재즈 스타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편곡과 기타연주를 맡았는데, 자칫 신촌 블루스 스타일로 나오면 적우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조심했다. 원래 내 스타일로 했다면 적우 앨범이라기보다는 가수만 바뀐 신촌 블루스의 또 다른 음반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워라 사랑아’는 원래 [Sweet & Blue Hours]에 ‘여자의 남자’라는 곡으로 담겼던 곡이다. 김한길이 작사한 이 곡은 당시 드라마를 위해 작곡했던 곡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삽입되진 못하고 독집에 수록했다. 적우가 제목과 가사를 조금 바꿨으면 좋겠다고 해서 김한길에게 직접 연락을 해 허락을 받았다. 오히려 이런 적극적인 모습이 좋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는 김현식 추모 앨범 [하나로](1991) 제작 당시 추모곡으로 만든 노래고 ‘어둠 그 별빛’은 아예 김현식이 1984년 자신의 4집 음반에서 발표한 노래다. 이렇게 김현식 관련 노래가 두 곡 실린 건 의도적인 부분이었나.

사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는 적우도 처음엔 김현식 추모곡인 걸 모르고 골랐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연하게 이렇게 김현식 관련 곡이 두 곡이 됐다. 적우와 처음 인연을 맺고 공연을 하게 된 데도 어쩌면 김현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김현식 얘기를 했다. 적우는 데뷔앨범에 ‘기다리겠소’를 수록하기도 했고, 김현식의 63빌딩 공연이 있었을 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공연 티켓을 사서 공연장에 갔지만 길이 너무 막히는 바람에 마지막 밖에 보지 못해 아쉬웠다는 얘기도 했다. 김현식 같이 되고 싶어 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어둠 그 별빛’은 엄인호가 프로듀스를 맡았던 정경화의 4집 [화답](2005)과 2016년 발표된 신촌 블루스의 30주년 기념 앨범에도 담겼다. 특별히 애착이 있는 곡인가.

개인적으로 김현식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3곡 가운데 하나다. 적우도 라이브 때 많이 불렀던 노래기도 하고. 적우의 공연에서는 김현식 스타일로 반주를 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좀 더 강렬하게 편곡해봤다.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와 같은 1970년대 록 스타일을 살리려고 했다. 


이번 음반을 함께 만들면서 본 적우는 어떤 가수인가.

신촌 블루스의 가수는 주로 고음 중심의 가수였다. 반면 적우는 중저음에서 안정적인 매력이 있는 가수다. 적우와 함께 작업하며 개인적으로 새로움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뭔가 변화를 시도하고 싶었을 때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느낌을 살리는 가수를 만났다. 전반적으로 부담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노래하는 게 좋았고, 사운드도 안정적으로 잘 빠졌다. 작업 할 때도 서로 생각이 잘 맞아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노래 부르다가 울컥할 때도 있었다는 얘기도 하고, 감정이 북받쳐서 언제 쓴 곡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가사에 빠져서 정말 가수답게 노래했다. 그런 가수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할까.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르는 걸 보고 관록이 있는 가수라고 생각했다.


이번 음반 발매와 함께 쇼케이스를 겸한 공연을 한다고 들었다.

11월 15일 오후 3시에 합정의 프리즘플러스에서 적우와 신촌 블루스 합동 공연을 한다. 신촌 블루스가 약 40분, 적우도 3~40분 정도 공연을 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김현식 그리기’의 의미를 두고 30주기를 맞은 그를 생각하는 시간도 가지려고 한다. 거창한 건 아니고 각자 김현식의 노래 가운데 인상적인 몇 곡을 이번 음반 수록곡과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쇼케이스 성격을 띤 공연인 만큼 곡에 대한 설명, 그리고 에피소드를 노래와 함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언급된 쇼케이스 공연은 사정상 연기되었습니다. 공연에 대한 후속 정보가 들어오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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