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4년 5월 15일(토)~16일(일), 25일(토)~26일(일)
장소: 인천문화예술회관 복합문화공간
취재, 글 김성환
인천은 한국에서 부산과 함께 나름 ‘로컬 록 음악 신’이란 것이 존재했던 곳이었고, 동인천의 영상 음악 감상실과 작은 공연장, 배다리의 음악학원, 그리고 관교동 상가 지하실들을 채웠던 밴드들의 연습실을 통해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활발한 록 밴드들의 활동이 진행되었다. 비록 이런 시대는 1990년대 후반을 끝으로 시들어버렸지만, 지금도 그 시절을 주도했고, 즐겼던 록 음악팬에게는 이번에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The Scene 2024’는 충분히 기대할 만한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록/메탈 팬들이 사랑했고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밴드들(블랙 신드롬Black Syndrome), 블랙홀Black Hole), 제로-지Zero-G), 크래쉬Crash)와 현재 인천을 근거로 활동하는 헤록 밴드(PNS, K.O.P.), 그리고 그 시절 로컬 신에서 화제를 모았던 밴드(아웃사이더스Outsiders, 화이트White)의 오랜만에 오리지널 멤버로 모여 갖는 재결합 무대까지 총 8팀의 밴드들이 ‘인천 록 신의 부활을 꿈꾸며’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라인업 발표 이후 매우 반가웠고, 그래서 4일간 이 공연의 기록을 제대로 글과 사진으로 담기 위해 계속 공연장을 찾았다.
첫 주의 첫날(5/18) 공연은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장수하며 꾸준히 한국 하드록/헤비메탈의 중심에 있는 관록의 밴드 블랙홀의 오랜만의 인천 무대도 반가웠지만, 무엇보다 1990년대 중반 인천은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드문 여성만으로 이뤄진 헤비메탈 밴드 화이트의 공연이 가장 반가웠다. 1990년대 중반 잠시 활동하면서 톰보이 록 페스티벌 등 여러 음악제에 참가 입상하기도 했던 그들은 짧은 활동을 남기고 해체했지만, 이번 공연을 계기로 4명의 멤버가 재결합했다. 당일 무대 위에 선 화이트는 비록 30년 가까운 시간의 공백에도 매우 파워풀한 연주와 열정적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보컬리스트 안승원의 보컬은 오랜 공백에도 전혀 노쇠함이 없는, 오히려 더 원숙하게 강렬한 힘을 보여주었다. ‘Immigrant Song’(레드 제플린), ‘Love Song’(테슬라) 등 남성 록 밴드의 고전부터 공식으로 발표했던 그들의 오리지널 트랙인 ‘Foxy Baby’와 ‘Shout’를 최초로 음반이 아닌 라이브로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한편, 데뷔 35주년을 맞은 현재까지 총 10장의 정규 앨범과 수많은 공연 무대로 정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블랙홀의 무대는 특별히 그들의 1990년대 앨범들의 대표곡의 주요 부분들을 메들리로 엮어 한 곡의 연주곡처럼 들려주기도 했으며, 후반부에는 최근작 [Evolution]의 수록곡들을 포함해 보다 유연한 하드록과 전자음도 가미한 그들의 2010년대 곡들을 들려주었다. 언제나 사운드 면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그들이기에, 빈틈없는 스피드와 그루브를 잃지 않는 연주력과 밴드 특유의 보컬 하모니도 완벽했다.
둘째 날(5/19)의 전반전을 책임졌던 밴드 PNS는 소위 ‘인천 로컬 록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불리는 밴드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인천을 근거로 록 밴드 활동을 했던 보컬/기타리스트 조봉현이 2000년대 후반부터 동지들을 규합해 시작한 이 밴드는 블루지한 기운 위에서 그런지/사이키델릭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현재까지 클럽 공연 활동을 비롯해 여러 인천지역 음악 페스티벌과 컴필레이션 앨범들에 참여했던 이들은 오는 6월 드디어 첫 정규작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날 공연에서 그들은 ‘혼돈의 시간 Part 2’, ‘Blind’, ‘Going Home’ 등 그들의 대표 작품들을 연이어 들려주며 선배 밴드들에 뒤지지 않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이어서 후반전을 책임진 밴드는 크래쉬였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한국의 스래쉬메탈을 대표하는 밴드로서 헤비메탈 마니아는 물론 일반 음악 팬에게도 그들의 이름을 알렸다. 지난 4월에 서울에서 있었던 라우드 브릿지 페스티벌에 오랜만에 등판해 건재함을 과시한 후 이날 공연 무대에 섰다. 세트리스트는 그간 이들의 대표곡들이라 할 수 있는 트랙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강력한 스래쉬메탈 리프가 몰아친 50분 가까운 시간이 끝날 즈음 신해철의 원곡 못지않은 큰 히트를 했던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가 흐르기 시작했고, 관객들이 열정적으로 싱얼롱을 하면서 둘째 날의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2주차의 첫날(5/25) 공연의 첫 무대는 밴드 카인드 오브 포이즌(Kind of Poison, K.O.P.)이 장식했다. 비록 데뷔는 첫 EP [Poisoning Symptoms](2022)로 했기에 2년 차 밴드지만, 다운헬(Downhell)의 리더 마크 최(Mark Choi), 파티메이커(Party Maker)의 리더였던 기타리스트 태지윤 등 멤버들은 이미 인디 록 신에서 10여년 이상 잔뼈가 굵은 뮤지션이며, 이들이 추구하는 사운드는 1990년대 시애틀 그런지/얼터너티브 록의 향기가 매우 가득하다. 이날 공연에서도 마크의 강력한 보컬 에너지는 관객들을 압도했고, 드라이빙감과 헤비한 리프도 모두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태지윤의 기타 연주도 자연스럽게 사운드를 잡아주면서 리듬 파트의 묵직함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겼다.
두 번째 무대의 주인공 제로-지는 2010년대에 다시 젊은 멤버와 함께 밴드를 재건했다. 각자 생업을 하면서 계속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꽤 오랜만에 선 이번 무대에서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열정과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1990년대에 발표한 1, 2집의 대표곡 외에도 신데렐라(Cinderella)의 히트곡 ‘Nobody’s Fool’과 ‘Gypsy Road’ 등 추억의 ‘쌍팔메탈’ 커버 무대도 섞어 다시금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헤비메탈이란 음악이 한국의 청춘들을 뜨겁게 했던 시대로 돌아가는 기분을 선사했다.
4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2주차 일요일(5/26)의 공연은 인천 록의 역사에서 또 한 번 의미 있는 날로 기록되었다. 첫 무대를 장식한 밴드이자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인천 로컬 록의 전설로 불렸던 밴드인 아웃사이더스가 무려 30년의 공백을 넘어 재결합 무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밴드의 초창기부터 끝까지 보컬리스트 자리를 지켰던 임동균, 1990년대 활약 멤버로서 이제는 이승철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더 유명한 박창곤, 밴드 미인, 김창완 밴드 등에서 활약했던 이민우(드럼), 그리고 박기택(베이스)까지 3기 라인업으로 무대 위에 선 이들은 그간의 긴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보컬과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긴 시간 무대에 선 적이 없었음에도 임동균의 외모와 보컬은 여전히 록커의 그 모습이었고, “대한민국에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곡은 가장 잘 소화했다”는 개인적으로는 전설처럼 들었던 이야기를 ‘Whole Lotta Love’와 ‘Stairway To Heaven’의 커버로 직접 확인하는 기쁨은 너무나 컸다. 무엇보다 그들이 1993년 록 밴드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기념해 참여했던 자작곡인 ‘Ronnie’s Song’까지 직접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기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어서 4일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의 주인공인 블랙 신드롬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박영철(보컬)과 김재만(기타)이라는 록계의 베테랑이 여전히 밴드의 두 기둥을 지키고 있는 이 순수한 헤비메탈 밴드는 이날의 공연에서 ‘노익장’이라는 의미의 표본을 보여줬다. 1시간 가까운 무대를 펼치면서도 절대 젊은 밴드에게 뒤지지 않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긴 세월 그들을 대표했던 곡들의 향연은 뮤지션의 라이브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진하게 익어감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번 공연의 기획 의도에 명시했던 ‘인천 록 신의 부활을 꿈꾸는’, 인천의 록 음악 팬의 마음이 4일간 문화예술회관에 이렇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런 기획이 단발성이 아닌, 앞으로도 규모를 줄여서라도 보다 정례화 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훌륭한 기획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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